2020년 10월 24일

세계적 분배정의에 대한 새로운 담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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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분배정의에 대한 새로운 담론들

어떤 분배여야 하는가는 당연히 가장 중요한 논점이지만,결론부터 말하자면 논의의 정교함만

달라졌을 뿐 뚜렷한 성과는 아직도 없다.

하지만 기본 구조,강제력,인간성,인과 등 중요한 쟁점들에 대한 논의가 만민법 이후

10년 남짓의 짧은 시간 안에 빠르게 등장했고,이런 논의가 등장했다는 것만으로도

타국의 문제에 대한 무관심과 그들과의 큰 빈부차를 당연하게 받아 들이던 과거의 상황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라는 점에서 가치 있는 한 걸음을 내딛었다고 볼 수 있다.

필자는 이 장에서 이제까지 제안된 세계적 분배정의를 롤스의 만민법을 기준으로 세 갈래로 분류한다.

첫째는 ‘만민법 이전의 주장들’로,초기 싱어와 세계시민주의적 분배 논의가 이 분류에 속한다.

둘째는 ‘만민법의 영향을 받은 주장들’로,분배의 원천과 관련한 분배 논의 모두를 포함한다.

이들은 롤스의 주장대로 국제관계에는 기본구조가 없기 때문에 세계적 분배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세계적 분배정의 불가능론자들과 우리 세계에도 기본 구조라고 불릴만한 것이 있다고

주장하는 가능론자들로 구분된다.

셋째는 ‘만민법과 무관한 주장들’이다.인간성을 중심으로 한 캐니의 제안와 인과를 근거로 한

포기의 새로운 주장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첫 번째 ‘만민법 이전의 주장들’은 앞 장에서 언급한 싱어와 롤스적 세계시민주의가 주장한 분배이론들이다.

처음 빈곤 문제를 제기한 싱어에게 기아에 시달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은

분명 도덕적인 문제였다.앞서 살펴보았듯이 싱어는 도덕적인 문제에 거리(distance)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봤고,국내의 시민들에게 분배받을 자격이 있다면

당연히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도 마땅한 자격이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롤스가 정의론 에서 서로 다른 사회들 사이에 존재하는 극단적인 부정의를

전혀 논의하지 않았고,그 이후의 만민법 에서도 정의의 단위를 현대의 민족국가에만 한정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싱어가 제기하는 방안은 너무 구체적이면서도,그 분배의 방식은 너무 불분명하다.

그는 우리가 시도할 수 있는 첫 단계로 만 18세 이상의 미국인 75%가 연간 50달러를 기부하는 등의

방안을 제시하지만,공리주의자인 그의 이론에 분배의 원칙은 없다.

이렇게 누군가가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우리가 사치품을 사는 데 돈을 쓴다면,

그것은 분명 그릇된 행위라는 것이 분명할 뿐이다.

그리고 싱어의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가 가진 무척 많은 것을 내놓아야 하는 강한 의무를 지게 된다.

싱어는 롤스가 정의의 두 원칙을 국내에 적용하고 싶다면,

앞서 살펴본 세계시민주의자들처럼 정의의 두 원칙을 세계적으로 확장하는 데에도

동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롤스적 세계시민주의자들이 주장했던 정의의 원칙은 우리 세계가 정의의 여건을 이루지 못한다면

적용되기 힘들다는 비판을 받고,대표적인 연구자인 포기 역시 다른 주장으로 선회한지 오래다.

롤스는 정의와 분배는 어떤 기본구조를 공유해야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을 받아들이는 연구자들이 제안한 분배 이론이 두 번째 갈래에 속하는 세계적 분배이론이다.

롤스가 주장하는 것처럼 분배의 여건에 기본구조의 공유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대응은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하나는 국내적 사회와 세계 사회는 다른 속성을 가진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세계적인 분배의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결론짓는 것이다.

이 경우 세계적 분배정의는 성립이 불가능한데,이런 주장을 하는 대표적인 이론가로

프리먼(S.Freeman),블레이크(M.Blake),리세(M.Risse),네이글(T.Nagel)이 있다.

이 이론가들은 대부분 우리 사회의 기본구조 안에서 국가가 가지는 법적 강제력이

바로 우리 분배의 원천이라고 주장한다.

또 다른 대응은 우리가 전 지구적 범위에서도 또 다른 기본구조를 공유하고 있다고,

그래서 우리의 세계도 다른 방식의 정의의 여건을 이루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방향의 연구자들은 인류의 지구적 여건이 왜 기본구조인가를 설명한다면,

거기서 분배의 근거 역시 도출될 것이라고 믿는다.

묄렌도르프(D.Mollendorf),코헨(J.Cohen),사벨(C.Sabel),산지오 반니(A.Sangiovanni)등이

세계적 분배정의가 가능하다는 주장을 하는 연구자들이다.

먼저 전 지구적 분배가 불가능하다는 롤스의 결론을 받아들이는 ‘불가능론자’들의 주장을 살펴보자.

이들은 국내사회와 국제사회의 차이를 강조한다.

블레이크는 우리 사회가 ‘분배’라는 것을 하게 된 원인을 국내 사회에서 개인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면서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는 데서 찾는다.

우리는 사회의 구성원 중 한 명으로 살면서,타인과 사회를 위해 우리의 완전한 자유를 일부 포기한다.

밤에는 이웃을 위해 음악 소리를 줄이고,정말 때려주고 싶은 사람을 봤지만 꾹 참았던 경험,

또 한 자리를 놓고 누군가와 경쟁하다 밀려난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블레이크는 이렇게 국가가 혹은 사회가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보상하고 정당화하는 방법이

바로 분배라고 말한다.

우리는 타인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자유를 제한하면서,사회의 일원으로서 무엇인가를

요구할 자격을 가지게 된다.

블레이크는 그래서 우리 사회가 분배를 한다고 설명한다.그렇게 된다면 사람들에게

강력한 사법적 강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정부가 있어야만 그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분배의

요구가 생기는 것이다.

블레이크는 이렇게 분배의 원천이 사법적 강제력에 있다고 특징적으로 명료화하고,

이를 통해 자유평등주의에 제기되었던 물음을 해결하려 한다.

즉,분배의 요구는 사회의 제도가 가지는 강제력에서 왔기 때문에 강제력이 있는 우리 사회 안에서

제기되는 분배의 문제가 강제력을 발휘할 기관이 없는 국제사회에서는 제기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리세 역시 다른 과정을 통해 같은 결론에 이른다.

그는 한 국가의 빈부에는 국내의 제도가 압도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제도론’(institutionaltheory)을 들어,

한 사회 내의 제도가 가지는 영향력이 구성원들의 빈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국제적인 분배는 제 역할을 할 수 없다고 결론짓는다.

국제적인 분배의 불가능성을 국내의 제도와 국제적인 제도가 가지는 강제력과 영향력의

차이에서 찾기 때문에, 그 역시 분배의 원천을 제도적 강제력에서 찾는 셈이다.

이와 반대로 세계적 분배정의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가능론자’들은 분배적 책무를

세계에 직접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책무는 강제력이 아니라 예를 들면 협동,기본선의 공급,경제적 상호 의존성 등에서

도출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은 예전의 롤즈적 세계시민주의자들과는 달리 세계적 분배에는 국내적 분배와는

다른 분배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묄렌도르프는 국내의 동포들에게 지니는 의무와 양립 가능한 또 다른 세계시민적 의무가

가능하다고 보고,연합적 정의의 원칙을 주장한다.

그 원칙은 ‘구성원 의존성’(membershipdependence)을 기반으로 한다.

그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조직이 강하고,비자발적이며, 그들의 공적 삶에서의 다양한 관계들을 위한

배경적 규칙들의 중요 부분들을 제정할 수 있고,규범에 따르고 있다면 우리는 한 조직의 구성원이다.

다시 말하면 연합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면 (국내의 분배보다는 약하기는 하지만) 분명

분배의 대상이고, WTO등의 현대 세계 경제 연합은 그런 정의의 원천이 될 수 있는 곳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후자의 입장은 이 전의 강제력을 기반으로 한 입장과 큰 차이가 있지만,

이들에게도 역시 분배의 원천은 일종의 제도,즉 기본구조이다.

여기서도 우리가 어떤 기본구조를 구성하고 있느냐,또는 구성할 수 있느냐에 따라서

분배의 가능성이 달라진다. 분배의 근거에 따라서 분배가 적용되는 범위와 대상은 달라지지만,

정의가 적용되는 기본구조에 따라서 어떤 정의가 적용되어야 할지가 결정된다는 점은

두 입장의 공통점이다.이들에 따르면 분배는 특정 구조를 전제하고 제기되는 정의의 물음에 대한

답변이어야 한다.

이 모든 주장들은 롤스의 문제제기,즉 국제관계가 정의와 분배를 적용할 만한 기본구조를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에 대한 답으로 등장한 것들이다.

분배의 정당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정의이기 때문에,정의의 근거,분배의 원천으로서의

기본구조에 관한 논의는 불가피해 보인다.

그러나 변화하는 세계에서 정의의 요건을 성찰할 수 있는 유효한 틀이 과연 현재의 기본구조를

기반으로 한 것이어야만 하는가를 묻는 프레이저는 이렇게 기본구조에 얽매인 접근법은

이제 지양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프레이저에 따르면 이제까지의 평등주의적 정의론은 사회과학적 접근을 고수하며,

그 과정에서 밝혀지는 것들을 가설이 아니라 사실로 간주하고 그 핵심 개념들을 실증주의적인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이런 방식은 결국 우리를 표준 사회과학적 접근에 의존하게 하는데,

이런 과학적 접근 방식으로는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문제가 되는 핵심 개념들,

예를 들면 국가의 정당성,강제력,협동,인권,기본선,문화,다양성,관용 등은 모두 이론과 가치를

포함하는 개념들이다.

이런 개념들로 구성되는 논증은 결코 경험적 사실에 관한 확정적 문제들로 환원될 수 없다.

기본구조에 기반을 둔 논증에서는 실제 세계 내의 사태를 참조함으로써 당사자의 범위를 선택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실제 기본구조를 관찰해서 당사자를 결정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 기본구조는 구조를 어떤 방식으로 구성하겠다는 우리의 결정에 의해 제한된다.

다시 말하면 구조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생각을 기반으로 한

“경험적 사실은 결코 독립적인 사실이 아니며,선행하는 설계가 만들어 낸 수행적인 인공물일 뿐이다.”

프레이저는 이렇게 기본구조에 입각해서 정의의 한계를 설정하겠다는 주장은 기존에 설정된 틀을

무비판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위와 같이 롤스의 영향권 안에 있는 양단의 연구자들이 활발한 논의를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은 기존의 롤스적 정의론을 흔드는 프레이저의 반론에 대처해야 한다.

그러나 세 번째 갈래인 ‘만민법과 무관한 세계적 분배이론’은 기존의 정의론을 극복하는

새로운 시도가 될 수 있다.

논의는 다양하지만 필자는 인간성 그 자체를 근거로 삼는 캐니의 인간성 이론과, 가난의 원인을 근거로

분배를 주장하는 포기의 인과적 이론을 소개하고자 한다.

포기는 처음에는 롤스적 세계시민주의를 주장했지만 만민법 이후 논의의 방향을 인과의 문제로 돌리며

새로운 주장을 시작했다.

먼저 캐니는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강한 분배적 정의를 가진다고,

그래서 제도나 강제력 등을 더 논의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논의는 누스바움(M.Nussbaum)이나 애피아(K.A.Appiah)등의 세계시민주의자들과도

궤를 같이한다.

우리가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과 특별한 관계를 맺지 않더라도,인간이라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그들에게 의무를 가진다는 것이다.

캐니는 우리가 어떤 나라에서 태어났는지는 전적으로 임의적이고,그것이 우리의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넘어서지는 못한다고 말한다.

또 그는 가난한 사회와 부유한 사회를 아우르는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 역시 지적한다.

우리는 동료 시민들과 평등한 기회를 가져야만 한다고 굳게 믿으면서도,

그런 기회의 평등이 전 세계적인 차원에 적용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캐니는 전 세계적 기회의 평등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비판하며,전 세계적 기회의 평등과

기존의 국내적 정의론이 양립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국내적 제도는 유용한 도구이지 인간의 의무를 규정하는 근본적인 형식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캐니와 세계 시민주의자들에게는 분배를 거부하는 완고한 강대국을 설득하기 위해

책무를 부여할 수 있는 분배이론을 구성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있다.

또 다른 주장은 포기의 인과성에 기반을 둔 이론이다.

롤스적인 분배 모델의 세계적 적용을 포기하고 나서 그는 현재의 세계질서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직접 겨냥한 논증을 구성한다.

포기는 현재의 제도와 세계 질서가 직접적으로 빈곤한 사람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2장에서 말했듯이 선진국이 이익을 얻고 있는 현재의 질서는 그 자체가 가난한 나라들의 발전을 막고 있다.

이 때문에 포기는 우리가 쉽게 동의할 수 있는 “소극적 의무”(negativeduty),

즉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의무를 부유한 국가들이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빈곤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인간적인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것을 보여 줄 뿐 아니라,

실제로 우리가 역사상 가장 큰 악을 행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포기는 이런 의무 위반을 보상하기 위해서 전 세계에서 생산된 자원 중 아주 적은 일부를 세계의

최소수혜자를 위해 모아보자는 ‘세계적 자원 배당금’(GlobalResourceDividend,GRD)을 제도화 하자고

주장한다.

이런 세계의 구조에서 이익을 보면서 가난한 나라와 그 나라의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국가들이

자기 영토의 자원에 전적으로 재산권을 행사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그 주장의 근거이다.

그러나 모든 분배의 기준을 자원으로만 한정하는 것이 충분한가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

포기의 이론이 이룬 가장 큰 성과는,빈곤 그 자체의 원인에 대한 집요한 연구를 통해 빈곤이

다만 개개인의 도덕성에 기반을 둔 원조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줬다는 데 있다.

포기는 빈곤의 원인이 분명 구조에 있다는 것을 밝혔고,그런 구조를 어떻게 수정해 나갈 것인가를

논의하는 것은 우리 연구자들의 몫이다.

배당금을 통한 해결이라는 포기의 제안은 하나의 제안일 뿐이다.

우리에게도 변화하는 세계의 정의론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를 탐색해야 할 의무가 있다.

포기의 주장대로라면 우리는 지금도 악을 행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제까지 논의되어 온 세계적 분배정의를 세 가지로 나누었다.

첫째는 만민법 이전의 초기 주장들이고,

둘째는 만민법의 영향력 하에서 기본구조에 따른 분배를 말하던 세계적 분배정의 가능론자들과

불가능론자들이며,

마지막은 만민법과 무관한 새로운 제안들이다.

롤스의 만민법이 빈곤 문제의 해결에 새로운 제안을 거의 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롤스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만민법 이전의 주장들이 분배가 적용되는 공간의 차이를 간과했다면,

만민법을 통해 우리는 그 공간에 주목하게 됐다.우리의 세계라는 공간이 정의의 여건을 갖추고 있는가의

물음은 그 이후 연구자들의 주요 소재였다.

그리고 프레이저의 문제 제기는 바로 그 정치적 공간에 대한 이해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극심한 국가적 빈부 차와 함께 세계적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우리가 정의를 구성해 나가야 할 공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참조문헌 : 바카라검증사이트https://crosswav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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